본문 바로가기
추억에 관한 모든 것

'닥터 마주봐'는 엉덩이를 살폈다 - 노가리 노가리 벗츄?

by 크루드 2023. 12. 30.
반응형

-그녀는 오소 엉덩이를 살폈다

 오소는 엉덩이를 깠다. 30대 여의사 '레이철 마주봐' ( Dr. Rachel Majuvah )- 실명이다-는 환부를 살폈다. 그녀는 말레시아 현지어로 병명을 말했다. 뭐라는 거야? 마주봐는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우리말로 '종기'라 쓰여 있었다.

 

 

오소에게 코타키나발루는 천국이었다. 드럼도 배우고, 50평이 넘는 콘도에서 왕처럼 살았다. 아니 지냈다. 내시나 시녀는 없었다. 고독사하기 딱이었다. 

 

코타키나발루 콘도를 장기 렌트한 오소. 하루에 열 번 이상 샤워를 했다. 피부 자극이 심했는지, 엉덩이 염증은 낫지 않았다. 

10월의 마지막 날. 드럼학원이 있는 킹피셔 플라자로 향했다. 

 

병원까지 가는 길은 편도 2차선. 도로 옆은 흙바닥. 듬성한 풀들. 무질서한 나무들. 가끔 보이는 낮은 건물들. 시골길은 볼거리가 없었다.

 

 

 Polyclinic Kingfisher (킹피셔 진료소)에 들어갔다. 병원 게시판 A4용지에는 의사 이름이 적혀 있다. 닥터 '레이철 마주봐' ( Dr. Rachel Majuvah ). 마주봐라니? 엉덩이를 살핀 그녀는 종기 처방전을 적었다. 

 

간호원은 두 명이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4학년 키였다. 둘 다 히잡을 쓰고 있었다. 간호사는 Pharmacy라 쓰인 곳에서 약을 가지고 나왔다. 투약 방법 설명을 했다. 아침 오후 저녁 밤 4회 먹으라 했다. 5일 분이었다.

 

 "4 times after food. 

For mornig, for afternoon. For evening, for night. 

You have to finish it just 5 days."

 

-오소의 사명

 "How much?" 오소가 말했다.

 "180 Ringgit." 

 

 180링깃이면 52,000원 정도 된다. 5만 원이 넘는다고? 오소가 놀랍다는 표정을 했다. 어깨를 위로 불쑥. 두 손을 어깨높이까지 확 끌어올렸다. 입은 크게 벌렸다. 눈알을 동그랗게 떴다. 500원짜리 동전 같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억양으로 말했다. 

 "What? It's amazing!!!"

 

  오소의 특기가 나왔다. 남 웃기기. 웃기는 일은 오소의 사명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도 그랬다. 과장된 제스처. 

 

간호사들은 삐질삐질 하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오소는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렸다. 윗눈썹을 위로 까딱했다. 경쾌하게 애교를 섞어 말했다.

 

 "Discount?"  

 Pu ha ha ha ha

 

 

 깎아 줄 수 있냐고. 병원 진료비를 깎아달라고? 간호사들은 폭발했다. 웃는 낯을 들킬세라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입을 가렸다. 그래도 잇몸이 다 보였다. 서로 어이가 없다며 웃었다. 웃음참기는 불가능했다. 이런 사람은 처음 본다는 표정을 지었다. 몸을 어떻게 하질 못했다.

 

 병원비 현금을 내밀었다. 진분홍 히잡을 두른 간호사는 비로소 웃음을 멈췄다.

 

 여행은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아무리 멋진 풍경을 보았어도, 재미가 없으면 뭔가 빠진 거지. 시골길에 지루했어도, 오소와 다니니 재미가 있었다. 

 

-노가리 노가래

 다음날은 키울루강 래프팅.

 

 유속이 느려졌다. 다른 고무보트 팀들과 패들로 물싸움을 했다. 현지인 여자 직장인들이 어디에서 왔냐고 관심을 보였다. 

 

 "From Korea" 오소가 대답했다.

 그녀들은 갑자기 원더걸스의 Nobody 노래를 했다. 

 "I want nobody nobody but you ♬" 

 

 나는 가사를 변형해 불렀다. 어깨를 들썩이며.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쳐다보며.

 "아이원, 노가리 노가리 벗츄

  아이원, 노가리 노가리 벗츄

  노가리 노가래, 노가리 노가래"

 

 그녀들은 뒤로 자빠지며 웃어댔다. 자지러졌다. 오소가 나를 보며 한 마디 했다.

 "야. 여기 천국이지 않냐?"

 "뭐가?"

 "한국에서 와이프. 이렇게 웃는 거 봤써어?"

 "아니"

 "여긴. 다 이래"

 

 오소는 웃긴다.

 사람들을 웃긴다.

 말의 억양과 표정, 제스처로 웃긴다.

 

 와이프는 못 웃긴다.

반응형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