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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관한 모든 것

질서있게 승차하라고? - 언어의 위계질서

by 크루드 2023.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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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문 쓰기.

 "기도문을 좀 써 주지?"

 "네? 주일 대표 기도문이요?"

 

 7년 전. 기도문 부탁을 받았다. 장인어른 출석 교회 주보를 집어 들었다. 주보에 게재된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검토했다. 행사 안내 광고도 살폈다. 현안을 알아야 헛발질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리를 내보면서, 몇 마디 후 자주 쉼표를 찍었다. 숨죽여야 하는 회중들은 답답하다. 마음에 응어리가 앉지 않도록, 2분 이내로 분량을 맞췄다.

 

 교훈을 강제로 주입하려는 설교. 깊이 없는 설교. 신과 소통할 시간을 빼앗는 설교에 한(恨)을 품은 적도 많았다. 회중들은 교회 예배 구경만 하고 남의 소리만 듣다가, 가슴 응어리를 싸들고 돌아갈 수도 있다. 

 

 대표기도 시간이라도 짧아야 한다. 기도문을 읽으면서 타이머를 쟀다. 1분 40초쯤 걸렸다.

 

-상위 개념어는 깊은 말 

 그다음 주, 장인 장모님은 대표기도를 잘하셨다고 고맙다고 했다. '기도가 깊다'는 말을 들었다고 좋아하셨다.

 

 왜, 기도가 깊다는 얘기를 들은 것일까? 아마 기도문 여기저기에서 추상적인 개념어를 사용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도문 작성은 이렇게 했다.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살폈다. 그것을 상위 개념어로 작성했다. 기도문에 구태의연한 내용은 뺐다. '거룩하시고,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같은 상투적인 언어 나열은 피했다. 신을 찬양 칭찬하는 말들을 쏟아낸다고, 신이 거들떠나 볼까? 대신 하나님의 '영원성' 인간의 '유한성' '나약한 인간존재' 등 추상적인 상위 개념어를 넣었다.

 

 안개에 싸여있고, 가려져 있고, 숨겨 있는 것들. 알 수 없는 것들은 신비함과 묘한 깊이를 느끼게 한다. 인간은 알려져 있고 신은 베일에 싸여있다. 인간은 신을 알 수 없어서 알고 싶어한다.

 

 신이 중심인 종교행위에서는 상위 개념어를 자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잘 모르는 세계를 내용에 담는 종교일수록 그럴 수밖에 없다.

 

-질서있게 승차하라니?

 반면, 실생활에선 상위 개념어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상위 개념어로 올라갈수록, 구체성이 떨어지고 희미해진다. 점차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진다.

 

 “지금 마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질서 있게 승차해 주십시오.”

 

 전철역에서 자주 듣는 말라. '질서 있게.' 그런데 '질서 있게'란 문구는 무엇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말일까?

 

 '질서 있게'라는 말은 '차례로' '순서대로'와 유사한 말이다. '차례로'가 '질서 있게'보다는 좀 더 눈에 보이고, '순서대로'가 '차례로'보다는 더 구체적이다.

 

 '순서대로'라는 말에 '줄'이라는 눈에 보이는 형상을 첨가하면 어떻게 될까? '줄을 서, 순서대로'가 된다. 좀 더 그림으로 그려진다.

 

-그림을 그려 줄려면 구체어로

 '승객 여러분께서는 줄을 서, 순서대로 승차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질서 있게 승차하기'가 머릿속에 구체화된다.

 

 '질서(秩序)'는 '줄 서기'보다 상위 개념어이다. 상위 개념은 주로 뜻글자인 한자어에 많다. 많은 뜻을 함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뜻을 압축하여 꾸러미를 만들면, 일반화할 수 있어 상위 개념으로 올릴 수 있다.

 

 그렇지만, 상위로 올라갈수록 구체성이 떨어진다. 쉽게 그림이 안 나온다. 특히 철학 분야가 그렇다. 절대적인 상위 개념어, 하위 개념어를 찾기는 어렵고, 말들끼리 키를 재어 비교해 봐야 상대적 상하위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신비함을 노래하려면 상위 개념어로 하늘을 봐야 하지만, 보이는 형형색색 그림을 그려 줄려면 하위 구체어로 땅을 살피며 말하는 것이 좋다.

 

 내가 쓴 기도문에는 상위 개념어와 구체어들이 어떤 비율로 섞여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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