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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관한 모든 것

'누가 꿀떡을 먹었니 항아리에서' 별이 쏟아져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밤, 캠프화이어. 캠프퐈이어.

by 크루드 2023.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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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꿀떡을 먹었니.

 “누가, 꿀떡을 먹었니, 항아리에서”

 “이지연이 먹었지, 항아리에서”

 “난 아냐”

 “그럼 누구?”

 

 중3 양문교회 여름 수양회. 경기도 가평 현리까지 관광버스로 갔다. 버스 뒤 쪽에 서서 갔다. 버스 안. <누가 꿀떡을 먹었니> 놀이가 시작됐다. 양 무릎 꽝/ 손뼉 짝 / 오른 엄지 척 / 왼 엄지 척 / 4박자 놀이다. 모르는 애들에게 이름을 알릴 기회였다.

 

 부회장 이지연은 내 이름을 자꾸 불렀다. 내가 꿀떡을 먹었다면서. 이런 행운이. 

 

 이지연은 신림여중 3학년, 단발머리였다. 통통하고 귀여웠다. 그녀가 웃었다. 눈매에선 가지런한 초승달 두 개가 보였다. 윗니 아랫니가 보이게 활짝 웃으면, 양쪽 볼이 볼록해졌다.

 

 버스 좁은 공간은 축복이었다. 지연이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꽃이라도 되어야 할까. 제발 이대로 멈춰라. 영원히.

 

 버스는 현리에 도착했다. 게임 오버. 인생은 자주 이렇다. 

 

-별이 우박처럼 쏟아지려나

 애들은 세미나실에 짐을 풀었다. 우리 삼총사는 마당에, 철우가 가져온 텐트를 쳤다. 밤하늘을 봤다. 현리 하늘은 서울 하늘과 달랐다. 다른 우주였다. 빼곡한 별들. 본 적이 없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별도 있었다. 인공위성일 거라고 했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별들이, 다른 별까지 긁어서 우수수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무너질지도 몰라. 별을 피해 숨을 곳은 없었다. 무서웠다.

 

 성경 아브라함 후손이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 했지. 상상도 못 했다. 서울 하늘 별이라야 충분히 세고도 남았으니까. 그 후로 빼곡한 별들을 볼 기회가 없었다.

 

 세미나실 앞 텐트 속에 랜턴을 키니 나름 아늑했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얘기했다. TV 영화 속 외국 배우 얘기. 여자애들 얘기도 했다.

 

 "야. 이지연, 귀엽지 않냐?" "응?"

 

 애들이 잘 때 얼굴에 장난치지는 않겠지? 얼굴에 그림 그려 놓을지도 몰라. 우리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서로 팔다리를 부딪히며 잤다.

 

-장 감독으로 데뷔한 날

 동틀 무렵. 몸이 배겨 일어났다. 얼굴은 낙서 투성이. 윗눈썹엔 치약이 칠해져 있었다. 3학년 임원 녀석들 짓이 분명했다. 내 흰색 러닝셔츠 속옷엔 빨간약도 묻었다. 

 

 범인은 슬리퍼 한쪽을 텐트 앞에 남겨 놓았다. 

 

 "이 슬리퍼 주인 누구야"

 

 허거덕. 이지연이었다. 속옷을 빨아 주겠다고 옷을 벗으란다. 러닝셔츠가 빨랫줄에 널렸다. 빨간 얼룩진 채로.

 

 오후엔 조별 성극 발표회 준비를 했다. 우리 셋은 한 조. 나는 '다윗과 골리앗'을 하자고 했다. 혼자 계획을 짰다. 소품으로 골리앗에게 던질 돌과, 목을 벨 칼이 필요했다. 칼은 긴 나무때기면 됐는데, 돌팔매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었다.

 

 얇은 나무 끝에 돌을 끈으로 묶어 활용하기로 했다. 발표회 우리 차례다.

 

 "나는 다윗이다. 너를 오늘 박살 내겠다"  

 "으하하하 하룻강아지. 가소롭다. 이 골리앗 장군을 뭘로 보고"

 "이거나 받아랏. 에잇"

 

 다윗 역할인 영기가 물맷돌을 던졌다. 돌은 슬로 모션으로 날아갔다.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내가 쥔 나뭇가지 끝에 다윗이 던진 돌이 묶여 있었다. 나뭇가지를 천천히 움직여, 철우 골리앗 이마에 딱 박았다.

 

 "으윽" 철우 골리앗은 쓰러지고, 영기 다윗은 나무칼을 들어 내리쳤다. "와." 모두 박수를 쳤다.

 

 배우는 철우와 영기였다. 그럼 나는 뭐야? 관광버스 게임에서 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니, 여세를 몰아 나를 홍보하자. 지금이 기회다.

 

 온갖 타이틀을 붙여, 포장했다.

 

 "지금까지. 골리앗에 박철우, 다윗에 안영기. 그리고

  연출, 장 감독

  극본, 장 감독

  소품, 장 감독

  조명, 장 감독

  연기지도에 장 감독.

  모두, 장 감독이었습니다"

 

 장 감독 애드립에 관객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 날 감독으로 데뷔했다. 

 

-바로 그, 캠프 퐈이어

 저녁식사 후엔 캠프파이어를 했다. 모닥불이 타올랐다. 3학년 회장이 기타 반주를 했다. 다른 임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이 녀석이 제일 부러웠다. 생김새도, 옷도 번듯했다. 학생들은 둘러앉아 노래를 불렀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물가로 데리고 가, 밤새 물 먹이네 ♪"

 

 연이어 '연가'를 불렀다. 몇몇 애들은 화음도 넣었다. 장작은 따닥 소리를 냈다. 작은 불꽃 몇 개가 흔들리며 휘이익 올라갔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

 

 밤이 되니 서늘했다. 살짝 떨렸다. 두 팔을 교차해 보온을 했다. 움츠리고 있는데, 타월이 어깨를 덮었다. 고개를 돌렸다. 가지고 싶었던 천사가 있었다. 지연이였다.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

 

 그 순간 세상은 멈췄다. 별들은 대롱대롱 위태하게 달린 채로 내려 보았다.

 

-사랑은 가질 수 없네

 그런데, 어색했다. 역할이 바뀌었다. 여자가 떨면, 남자가 옷가지로 덮어줘야 하는데. 뒤집힌 상황이었다.

 

 필름을 갑자기 뒤로 돌려 편집할 수도 없었다. 미안했다. 남자답지 못했다. 바보 같았다.

 

 지연이가 먼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를 가질 수 있을까? 이제 어떻게 할까. 그리워하고, 사랑해 볼까. 아니. 사랑은 시작됐지.

 

 다음날 돌아오는 버스 속. '누가 꿀떡을 먹었니' 놀이를 기대했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졸거나 멍했다.

 

 차창 밖 왼편으론. 북한강이 섭섭하게 흘렀다. 나무들은 생각 없이 지났다. 여기서 내리면, 각자 집으로 가겠지. 우리는 나눠지겠지.

 

 사랑은 밝은 하늘만이 아니다. 사랑은 설렘만도 아니다. 사랑은 섭섭하다. 돌아서면 그립다. 

아프다. 애달프다. 

가질 수 없기 때문일까.

 

바블껌 - 연가, 석별의 정 >  

https://youtu.be/T93hFCS3l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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