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형식병원(가명)에서 교통사고로 입원한 염형태(가명, 37)씨가 독극물이 든 우유를 먹고 숨졌다. 이 우유는 11살짜리 아들 동민(가명)군이 갖다 놓은 것. 아들은 우유에 독극물이 들어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처음 동민 군은 독이 든 우유를 20대 여자에게서 받았다고 했다. 아빠 교통사고를 낸 버스 운전기사의 아줌마 동생이라는 여자였다. 염형태 씨가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은 한 달 전인 3월 12일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버스에 치였다. 버스운전기사는 염씨가 먼저 버스로 뛰어들었다고 했지만, 가해자 신분이었다. 동민 군의 진술 때문에 버스 운전기사가 범인으로 몰리게 되었다.
사건 후 피살자의 부인 김현미(가명, 39) 씨의 행동은 어색하고 상식에서 벗어나 있었다. 남편이 죽었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남편 독살극이 신문에 보도되자 여러 신문을 사서 읽기도 했다. 영안실 전화는 사용하지도 않고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것도 수상했다.
경찰은 독살 사건 14시간이 지난 후 '보험관계를 수사해 보라'는 제보 전화를 받았다. 경찰은 남편이 피보험자인 보험계약서를 발견했다. 남편 사망보험금으로 6천만 원을 아내가 받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하루가 지난 1983년 4월 27일 경찰은 아들 동민군과 할머니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염 군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시켜서 한 짓'이라고 실토했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여러 번 연습했어요"
"형사가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라고 가르쳐 주었어요"
부인 김현미 씨는 여고 졸업 후 5년간 가사를 돕다가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서 남편 염 씨를 만났다. 염 씨는 공장에 다녔지만 관절염을 앓아 퇴사했다. 그 후 골수염으로 앓아 다리를 절었다. 아내 현미 씨는 화장품회사 외판원을 하다 한 해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오빠 명의로 라피네화장품 대리점을 시작했다.
김현미씨의 부채는 4천 5백여만 원으로 조사됐지만, 실제는 1억원에 이르고 있었다.
현미 씨는 생활력이 강했다.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말도 잘했다. 논리정연하고 설득력 있는 언어를 구사했다. 크게 잘 살지는 못했지만 휴일이면 두 아들을 데리고 놀러 가기도 했다.
반면 남편 염형태 씨는 여호와의 증인 전도 사업에만 집중했다. 가사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다 버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남편이 사고가 날것을 미리 알고 보험에 든 것 같아 남편 보기에도 송구스럽고 아는 사람들에게 부끄럽다" 고 부인 현미씨는 주변에 말했다.
사망 한 달 전 교통사고로 입원한 뒤, 채권자들이 병원까지 찾아왔다. 채권자들은 '저 여자는 남편이 죽기만을 기다린다'고 수군대기도 했다. 그 때 김현미 씨는 "보험금을 타면 빚을 갚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부인 현미 씨는 범행을 자백했다.
"남편이 독살을 위장해서 보험금을 타 빚을 갚자고 했어요"
"이 말을 듣고 처음엔 펄쩍 뛰었지만 역시 남편은 생각이 깊은 분이라고 느꼈고요."
현미 씨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남편 사망 전 사전 분위기를 짰다. 요구르트 5개, 우유 5개에 냄새가 진하게 나는 농약을 넣어 공동취사장에 갖다 놓았다. 4월 16일 전화를 걸어 459호 입원환자 누나에게 유산균음료를 갖다 먹으라고 해 마시다가 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9일 후 4월 25일 독극물인 청산염을 우유에 넣어 아들을 시켜 남편 병실 책상 위에 놓게 했다. 현미 씨는 밤 10시쯤 청산염 분말이 든 캡슐 7개를 병상 위에 놓았다. 이것으로 남편은 결국 독살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남편과 타협한 후 죽인 것이어서는 보험금을 탈 수 없지 않으냐"고 현미 씨는 수사관에게 묻기도 했다. 현미 씨는 촉탁( 囑託, 부탁할 촉, 부탁할 탁)살인죄를 저질러 사망보험금을 결국 탈 수 없게 되었다.
■ 아들도 알았다
"아들도 당신이 준 우유를 염씨 가 마시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그렇다. 평소 남편과 내 말을 잘 들어 왔고 사건 전에 남편이 따로 불러 설득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아들도 잘 알고 있다고 현미 씨는 진술했다. 그렇지만 아들은 11세로 미성년이라 처벌받지 않게 되었다. 이로써 교통사고 버스 운전사는 혐의를 벗었다.
1983년 7월 26일 서울형사지법에서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도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남편이 죽여달라고 간청했다고 해도 어린 아들까지 공범으로 가담시켰기 때문이다. 남편의 죽음을 사고사로 가장하기 위해 음료에 농약을 타서 배포했던 건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질타했다. 그러나 냄새나는 농약을 사용해 치사량 미달하게 음료에 주입해 실제 피해가 없도록 한 점과 어린 두 아들을 생각해 형량을 깎아준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촉탁살인 및 살인 미수혐의를 적용,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정상참작 사유로 다음 내용을 들었다.
♠남편이 허약하고 경제력이 없는 상태에서 피고인이 생계를 위해 동분서주하다 빚으로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 점
♠남편이 연탄가스로 집단자살을 기도하고 교통사고로 죽기를 시도한 점
♠입원후에 친지에게 공기주사로 죽여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는 점
그 후 대법원에서 1심 원안대로 형이 확정되었다.
이 세상에는 비극이 있다. 많은 경우 경제적인 어려움이 비극의 중심에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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