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사람이 죽었다
서부이촌동 11평짜리 시민아파트. [1]
무허가 판잣집들을 헐고, 철거민을 우선 입주시켰던 아파트였다. 서울시에서 무주택 일반인에게 공매한 것이다. [2]
우리 집은 시민아파트 3층. 한강철교 기찻길 옆에 있었다. 화장실은 집 밖에 몰려있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호실 번호가 달린 화장실이 죽 붙어 있었다. 각 화장실은 계단 하나를 딛고 올라가야 했다.
볼일 보고 줄을 당긴다. 머리 위에 설치된 물통에서, 물이 아래로 쏟아져 나왔다. 곧바로 물이 채워지는 소리. 위 물통에서 머리와 얼굴로 물방울이 튀었다.
겨울. 화장실 공동 창문엔 고드름이 열렸다. 바닥은 미끄러웠다. 얼음이 얼었기 때문이다. 바지를 내리고 쭈그려 앉는다. 엉덩이에 차가운 바람이 지난다. 김도 꾸물꾸물 올라온다.
영하 10도가 넘는 날. 아파트 다른 동에서 사람이 죽었다. 화장실에서 노인이 죽었다. 차가운 공기에 혈관이 좁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힘을 주면 혈압이 올라가니 위험하다. 힘을 줄 때는 숨을 내뿜어야 한다. 숨을 참고 힘을 주면, 혈압이 상승하니까. 지금도 화장실에서는 숨을 내쉰다.
-시영아파트로 이사
열악한 시민아파트에서, 바로 옆 16평짜리 시영아파트로 이사 갔다.[4] 이사 간 후 옛 시민아파트로 향했다가 새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몸이 자동이었다.
화장실이 집 안에 있었다. 부엌 아궁이에서 연탄을 땠다.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머리가 띵했다. 동치미 국물을 먹었다. 서울에선 매년 17만명이 연탄가스에 중독돼, 800명씩 사망했다.[5]
병약한 엄마 때문에 세탁조와 탈수조가 분리된 2조식 하얀 세탁기도 들여놓았다.
접지를 위해 전선을 수도꼭지에 묶어 놓았다. 엄마가 내게 세탁을 맡기면, 물이 채워진 후 하이타이 가루를 뿌렸다. 세탁기 바닥에는 동그란 청회색 원판이 좌로 돌다가 우로 돌다가 했다. 세탁이 끝나면 오른쪽 탈수조로 빨래를 옮겼다.
빨래가 튀지 못하게 고무원판을 덮었다. 탈수 시간을 맞추고 탈수기를 돌리면, 좌우로 흔들리며 쿵쾅쿵쾅 충돌하는 소리가 자주 났다.
소리가 나면 옷가지들을 꺼냈다. 몇 번 접어서 차곡차곡 다시 넣었다. 운동화도 비누칠한 솔로 문대고 헹궜다. 그 것도 탈수조에 넣고 돌렸다.
-석유곤로
집에선 석유곤로(石油焜爐, 또는 石油風爐)를 사용했다. [6] 여기에 내가 가끔 불을 붙였다. 똬리를 튼 스텐 손잡이를 잡아 연소통을 올리면 검은 그을음이 붙은 심지가 보였다. 팔각형 통에 담긴 유엔(U.N)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연소통을 닫았다.
연소통을 좌우로 스윽스윽 밀어 불붙은 심지를 안정화시켰다. 그래도 그을음이 나면 눈이 매워 눈물이 났다. 가끔 가위로 딱딱하고 검은 윗 심지를 잘라 주었다.
곤로에 핸드 사이펀으로 등유를 넣는 것도 내가 했다. 재미있었다. 손잡이를 꼭 쥘 때마다 게이지 바늘은 좌우로 흔들리며 F를 향해 움직였다.
흰색 석유통 바닥에 등유가 남으면 깔대기를 곤로에 꽂았다. 석유통을 들고 기울여 바닥에 남은 등유를 부었다.
-초겨울 강변
1974년. 국민학교 2학년. 시영아파트 발코니 남서향 창으로는 한강물과 건너편 노량진, 여의도가 보였다. 초겨울 강바람이 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차갑게 넘어가는 해와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뒷 발코니 바깥 누런 풀밭은 비스듬히 꽂힌 벽돌로 둘렸다. 그 앞 철조망 너머로 강변북로 차들이 찬바람을 일으키며 쌩쌩 달렸다.
병약한 엄마는 누워있었다. 윗눈썹 아래가 쑥 들어가 있었다. 껍데기만 남은 엄마가 살아있는지 흘깃 보았다.
해가 떨어지면 강물은 어두운 색깔로 변했다. 바람 부는 날엔, 덜 닫힌 창문 틈에서 휘힝 소리가 났다. 아직 치렁치렁하지만 뼈만 남은 버드나무 가지들은, 이파리를 떨군 채 해쓱해져 바람 따라 흔들렸다.
강가는 슬펐고, 커도 이런 곳에서는 살지 않겠다고 속으로 말했다.
<참고자료>
[1]市民(시민)어파트6채 270가구 일반에 公賣(공매)키로, 경향신문, 1969.8.19
[2] 無住宅者(무주택자)에공매,매일경제 1969.08.26
[3] 비싼 市營(시영)아파트, 조선일보, 1967.05.26
[4] 닥아 오는 아파트生活(생활), 매일경제, 1969.05.17
[5] [사설] 겨울채비에 조급한 마음, 경향신문, 1976.10.22
서울에서만도 매년 평균 17만명이 가스에 중독되고 8백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치안당국의 집계고 보면 연탄가스야 말로 가장 몹쓸 전염병마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다. 문틈으로, 갈라진 방바닥 틈새로 스며들어 희생자를 내는 가스 사고는 가스 그 자체보다도 방심과 부주의가 더 무서운 적임을 알야 할 것이다.
사신의 정체는 바로 완전 연소전에 발생하는 1산화탄소라는 사실을 명심할 때 불피우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의 조절, 겨울철에 접어들기전 방과 아궁이 손질등으로 얼마든지 참변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사고의 15%가 10월에, 20%가 11월에 그리고 25%가 12월에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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