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억에 관한 모든 것

진공관 전축, LP레코드판에선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가 회전했다

by 크루드 2023. 12. 31.
반응형

-회전하는 레코드판

 전축 턴테이블이 돈다.

 

 

  "내가 놀던 정든 시골길, 소달구지 덜컹대던 길

   시냇물이 흘러내리던, 시골길은 마음의 고향 ♬"

 

  국민학교. 서부이촌동 시영아파트 안방. 진공관 전축에서 노래가 나온다.

 

  레코드판에는 들어 있던 노래는 <시골길>. 임성훈은 이 노래로 TBC가요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76년이었다. 

 

 학교 가기 전 아침에 전축을 킨다. 양 손바닥 사이에 검은색 레코드판을 수평으로 낀다. 검은색 플래터(platter) 원반 위에 레코드판을 올린다. 스펀지로 레코드판을 한 번 닦는다. 

 

  톤암(tone aram) 앞쪽 검은 카트리지 헤드 밑에 바늘이, 뒤엔 무게추가 달렸다. 손가락 걸이에 검지 손날을 걸어 카트리지 헤드를 든다. 레코드 판이 회전하면, 듣고 싶은 음악 위치에 헤드 바늘을 내린다.

 

  회전하는 레코드판. 살작 오르락내리락하며 돈다. 

 

   레코드판은 주재료 PVC를 가열한 후, 니켈판을 프레스에 걸어 찍어 만들어 낸다. LP(long playing) 레코드판은 천천히 돌기 때문에 긴 클래식곡을 담을 수 있고, 더 많은 곡을 수록할 수 있다. 1분간 78번 회전하는 종래의 SP(short playing) 레코드를 개선해, 33⅓회전으로 개선한 것이었다.

 

 

-레코드판에 있는 것들

  아침에 '시골길'을 듣는 날. 하루 종일 그 노랫소리가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내가 놀던 정든 우리 집 ♪

   음악소리 울려 퍼지던

   우리 집은 마음의 고향 ♬"

 

 가사 중 '시골길'을 '우리 집'으로 바꿔서 흥얼거렸다. 우리 집은 저기압이었다. 엄마가 항상 아팠기 때문이다. 형광등이 켜 있어도 어두웠다. 이 어두운 먹구름을 잠시 밀어낸 것은 전축 음악이었다. 신기한 도구였다.

 

  영화음악 레코드판도 자주 돌렸다. 'The battle of Jericho'는 씩씩한 합창이었다. 가슴과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올리비아 핫세 주연 로미오와 줄리엣의 'What is a youth'. 이 노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신비의 세계로 데려갔다.

 

  레코드판에 인쇄된 겨울 옷과 러시아 모자를 보면서, 닥터지바고 '라라의 테마'를 들었다. 얼어붙은 땅을 상상케 하는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소리는 밝지 않았다.

 

  석양의 무법자로 전축 바늘이 진입한다. "호이호이오, 와와와♪. 호이호이오, 와와와 ♬"  휘파람 소리.

 

  강변성결교회 이중태 목사 성가집 레코드판은 7인치로 작았다. 독창은 끝까지 듣지 않았다.

 

  조용기 목사 레코드에선 설교가 나왔다. 45 RPM으로 가속 레버를 움직이면, 지저귀는 새소리처럼 들렸다. 

 

  "그렇게 저는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그래함이 되는 꿈을 꾸었던 것임 "

 

  그의 설교는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변사가 말하는 것 같았다. 빌리그레함처럼 세계적 유명인사가 되기 위해 그를 흉내 내었다고 한다. 유명인이 되겠다는 그의 말. 인간의 욕망을 보았다. 그는 많은 청중 앞에서 설교하고 연설하는 자기실현 목표를 마침내 이루었다.

 

-바늘에서 소리가 나온다

  레코드판에 소리가 어떻게 들어가 있는지 궁금했다. 전축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 레코드판을 올리고 턴테이블을 손으로 돌렸다. 바늘이 진동하면, 찌직찌직 말소리 음악소리가 세미하게 들렸다.

 

 

  레코드판에 새겨진 소리골을 공중에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전축을 만지면, 우울한 생각은 잠시 달아났다. 바늘로부터 소리가 나오는 과정이 신기했다. 아버지는 1달에 한두 번 레코드를 돌렸고, 엄마는 전축에 관심이 없었다.

 

-레코드판 음악 세계

  전축은 내 장난감이었다. 전축에 달린 라디오 다이얼을 돌린다. 사이클 바늘이 수평으로 왔다갔다 한다. 전원을 넣는다. 직사각형 라디오 사이클 바 아래에서 노란 불빛이 은은히 올라온다. 반짝이 천으로 막혀있는 스피커를 철사로 찌른다. 그래도 소리는 계속 나온다.

 

 

 수동 턴테이블. 손으로 헤드를 들어 올려 놓아야 한다.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귀찮다. 큰 이모 댁 자동 턴테이블을 보고 난 후 부터. 

 

 땅따먹기, 망까기, 구슬치기, 다방구, 치기장난하고 놀던 시절. 전축은 신비한 음악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동생과의 싸움박질.

  아픈 엄마를 고통 속으로

  몰고 있다는 죄책감.

 

  마음을 어루만져 준

  전축 속 음악.

 

< 참고자료 >

[취향의 물건] 오래된 음악 'LP판', 조선일보, 2017.03.29

"1948년 6월 어느 날 아메리칸 컬럼비아사는 1분간 78번 회전하는 종래의 SP(short playing) 레코드와는 다른 33⅓회전 LP(long playing) 레코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THE BATTLE OF JERICHO>

 

<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

 

반응형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