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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관한 모든 것

추억에 관한 모든 것. 삶을 돌이켜 묵상하는 맛은?

by 크루드 202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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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는 묻는다. 

"왜 내가 당신의 글을 읽어야 하나요?"

 나는 답한다.

  "함께 여행을 떠나볼까요? 그대 안으로"

 

 

-추억들

  지금도 철없고 영원히 그렇겠지만, 철없던 어릴 적 장면을 떠올려 본다. 기억을 끄집어 헤쳐 본다. 속에는 슬프고 분노에 차있는 내가 있다. 천진한 햇빛 속 나도 있다.

 

  내 안에는, 알아주지 않고 돌봐주지 않았던 내가 산다. 내 말을 들어보고 공감하고 이해해 주려한다. 기억 속 빛바랜 사진들을 꺼낸다. 창고를 뒤져 앨범의 먼지를 떨어낸다.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지? 질문을 던지고 기다려 본다. 어깨와 귀를 기울인다. 기록물을 탐색한다. 

 

 

-지난날 나

  어릴 적 내 캐릭터에 빙의되어 다시 살아본다. 스산하고 매서운 바람소리. 등허리를 녹이는 반가운 햇빛. 어릴 적 구멍 난 양말을 신는다. 봄날의 차갑고 미지근한 빗방울을 맞아 본다. 눈밭을 굴러도 끄떡없다는 초록옷을 망설이며 입어보고, 끈 달린 검은 벙어리장갑을 끼고 머리를 압박하던 털모자도 써 본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 입김을 호호 불고, 콧김 속 수증기를 살펴본다. 

 놀라고 벅찬 쿵닥쿵닥 심장소리. 

 긴장해 흥건해진 손바닥. 

 사랑 노래와 한 맺힌 아우성. 

 

 뜨겁고 식은 눈물 온도.

 야단맞던 소리에 귀를 막고 고개를 젓는다.

 향긋한 여자 화장품 냄새와 코를 찌르는 악취.

 칭찬 소리에 벅찬 가슴. 

 

-내 안에서 찾는 나

  멀고 힘겨운 학교 길을 걸어 보고, 집 뒤 푸르고 누런 풀밭을 펄쩍펄쩍 뛰어 본다. 강변북로 철조망을 기어 올라 쏜살같이 건넌다. 무너지기 직전인 거칠한 블록 담을 쓰윽 문댄다. 꺼끌거리며 떨어지는 모래들. 인생을 비켜가지 않는 비극을 재생한다.

 

  "그런 일들이 있었어."

 

 시간은 지났다. 

 상처는 가라앉았다.

 슬픈 프로그램은 잠재했다.

 영문 모르는 헛발질.

 

-재생 대신 새로이 재구성한다

  내 이야기 속엔 극복하지 못한 취약성이 들어있다. 무의미가 꿈틀거린다. 어쩔 줄 모르는 망설임도 가득하다. 독자를 훈계하려는 마음은 없다. 인내하며 들어주는 독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과거를 돌아보고 추억을 회상하면 알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프로그래밍되었는지. 부끄러운 졸작이라 생각하고 써 내려간다. 

 

  죽는 순간까지 떠나지 않을 과거. 기억은 점점 바래져 간다. 잡아놓지 않으면 소실되고 말 것들이다. 기록해 본다. 말소리는 공연장 음악처럼 우주 속으로 사라진다. 기록은 당분간 인간 세계에 머문다.

 

  기억을 완벽히 재생할 수는 없다. 재구성할 뿐. 

 

 글을 쓰며 덧대고 새로운 재료로 비슷하게 복원할 수만 있다. 불에 타 무너진 옛 궁궐을 현재의 재료로 개축하는 것과 같다. 추억에 새로운 해석이 부가되기도 한다.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면, 자신을 보는 관점이 변한다. 나를 달리 볼 기회를 포착한다.

 

-추억 회상은 감사의 기회다

  추억을 회상하는 글을 쓴다. 수치심 부끄러움 분노를 재경험할 수도 있다. 취약했던 나, 엉성한 나를 만나 당황할 수도 있다. 나를 받아줄지 외면할지, 용서할지 부끄럽게 놔둘지, 다시 선택할 수 있다. 

 

  추억을 떠올리고 감사할 수도 있다. 

 속 사람이 하고픈 모든 감사는 지나간 추억에 대한 것이니까!

 

 

 삶은 흘러 떠내려간다. 추억을 쓰면서 어린 나에게 미소를 보낸다. 슬픔과 분노로 막힌 곳. 벌어진 틈새로 밝은 빛이 새어 나온다. 왜 밝으냐고? 빛이기 때문이다. 빛을 찾는 것. 그 게 우리 몫이다.

 

  내 얘기를 엿보고 듣는 독자들

 징검다리 하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자신만 아는 추억의 세계로 건너갈 징검다리.

 

씨를 뿌려보자.

아름다운 추억의 꽃씨를 뿌려보자. 

물을 주고 온기를 전해보자.

꽃이 피면

즐거워하자.

^.^

"우리는 아름다운 기억에 감사하고, 

아름답지 않은 기억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 

그 시절을 잘 극복했기 때문이다. 

과거가 어떤 기억으로 남든, 

그건 

전적으로 우리 몫이다"

-다니엘 레티히 『추억에 관한 모든 것』 p.347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https://youtu.be/oTfG3zkxw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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