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고사 변사체로 발견
'서울 n국민학교 여교사 인천 앞바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방송 멘트를 들었을 때, 그 여자 선생님 얘기라고 직감했다. 4학년 우리 담임선생님과 친했던 여자 선생님.
정수정(가명) 선생님은 어떻게 죽었을까? 예뻤던 선생님은 그 젊고 활짝 핀 인생을 어떻게 마감하게 됐을까? 왜 인천 앞바다에 떠올랐을까?
40여 년 전의 일이 궁금하다.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여자 선생님 변사 / n국민학교 여교사 죽음 / oo국민학교 여교사 실종
여러 검색어를 동원해 찾기를 몇달. 신문 검색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었나 보다. '학교명'과 '실종' 또는 '여교사'라는 어구로 검색이 가능했다.
2. 정수정 선생님
정수정(가명) 선생님은 4학년 우리 반에 자주 찾아왔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도 여자였기 때문에 서로 친했다. 정 선생님은 아기 같은 피부에 왼뺨에 보조개가 들어간 얼굴이었다. 점심 때 정 선생님 나타나면, 우리 반은 환해졌다. 정수정 선생님이 웃으면, 왼쪽 입꼬리가 곡선을 그리며 하늘로 향했다.
목소리도 불이 켜진 듯 환했다. 저렇게 예쁜 선생님이 우리 반을 맡으면 얼마나 좋을까. 턱을 괴고 생각했다. 그녀가 오길 기다렸고, 예술품을 감상하듯 바라봤다. 선생님은 4학년 내내 찾아왔다.
해가 바뀌어 5학년이 되고, 남녀 분반이 되었다. 잔인한 4월이 되었고, 1학년을 맡았던 정수정 선생님이 학교에 1주 이상 나오질 않았다.
아무도 이유를 몰랐고, 실종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3. 삼각관계
정수정 교사는 서울교대 1학년 때, 2학년 이(李)씨와 결혼을 약속했었다. 교사 발령 후 1975년까지도 이(李) 씨와 사이는 좋았다. 그러다 1976년 우리 반에 놀러 올 때는 동료 교사였던 한(韓)씨와 사귀어 삼각관계가 된 상태였다. 애인 이(李)씨는 군복무 중이었고.
정(鄭) 교사는 이(李)씨와 결혼 약속을 했지만, 6살 위인 동료 교사 한(韓)씨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이(李)씨는 시커먼 말단 사병이었고, 한(韓)씨는 자리가 잡힌 듬직한 동료 교사였으니까.
그녀는 갈등했을 것이다. 이(李)씨와의 인연을 끊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1977년 4월 15일 실종 전날, 밤 10시 그녀는 한(韓)씨와 함께 귀가했다. 휴가 나온 이(李) 병장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와 만나 말다툼을 했다.
다음날 4월 16일 정 교사는 오후 1시쯤 이병장의 전화를 받은 후, 동료 교사들에게 하소연했다.
"무슨 수라도 내야지, 정말 못살겠다"
그날 정(鄭) 교사는 인천 월미도 관문여관에서 이(李)씨와 밤을 함께 보냈다. 담판을 지을 모양이었다. 밤새 잠 못 자고 실랑이했다. 하소연 · 큰 소리 · 눈물 · 한숨 · 원망 · 욕설
4. 실종 후 발견
다음날 새벽 5시 30분, 그녀는 여관 주인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해, 혼자 나간 후 실종 되었다.
실종 37일 만에 그녀는 외상 없는 표류시체로 발견되었다. 청색 스커트에 청색재킷, 붉은 줄무늬 블라우스, 잿빛 구두차림이었다. 방수기능의 자동 시티즌 손목시계는 그때까지 작동하고 있었다.
실종 5일 만에 학교로 한 통의 우편물이 배달되었다. 12만여 원이 들어있는 자치회비 예금통장과 도장 그리고 정교사 주민등록증이 들어 있었다. 봉투의 글씨는 정수정 교사의 필적이 아니었다.
경찰은 수사 방향을 네 갈래로 정했다. 이(李) 병장에 의한 살인, 자살, 제3인물에 의한 피살, 단순가출 등.
군에서 조사를 받은 이(李) 병장의 혐의는 찾지 못했다.
경찰은 정(鄭) 교사가 숨진 뒤 바다에 던져졌는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뛰어들었는지, 약물에 중독됐는지 등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가검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 결과 정(鄭) 교사의 폐, 간 등에서 플랭크톤이 검출, 바다에 빠진 후 물을 마셨음이 확인됐다.
5. 자살이라면
경찰은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①정(鄭) 교사가 새벽 5시 30분 애인 이(李) 모병장(25)과 함께 투숙했던 관문여관에서 혼자 나갔으며 ②평소 이(李) 병장과 한(韓) 교사를 두고 삼각관계로 고민한 점 ③외상이나 목 졸린 흔적이 없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정(鄭) 교사가 ① 실종된 후 학교로 우송된 우편 봉투의 글씨가 정(鄭)양의 필적이 아니고, ② 자살로 단정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도 없어 ③ 다른 사람이 떼밀어 익사했을 가능성에 대해 계속 수사하기로 했다.
그 이후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알 수 없다.
정(鄭) 교사가 실제 자살을 했다면, 16일 밤 자살할 만큼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정(鄭) 교사 부모님은 사건의 내막을 알고 싶어 장이 썩었을 것이다. 다 키운 사랑스러운 딸의 죽음을 어떤 부모가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4학년 우리 반에 웃음 띤 얼굴로 봄을 몰아왔던, 그녀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니.
죽은 이는 말이 없다.
사랑이 도대체 뭐길래.
사랑과 죽음은 동격인가.
편안하지 못할 그녀이지만, 그래도 평안하기만을 기원한다.
ps 아래 1977년 5월 25일자, 5월 27일자 기사를 첨부합니다. 아래 기사는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 1977.5.25 조간 7면 기사
실종여교사(女教師) 표유시(漂流屍)로 발견
(사회) 김태주 기자
정수정(가명)양 37일만에 월미도 앞바다에
타살—자살 두 갈래 수사
3각(角)관계‥"인천(仁川)간다"감감소식
우송한 학급통장 제3자 필적
【인천(仁川)=김태주(金太主)—천호원(千浩元)기자】
지난달 17일 인천(仁川)에서 의문의 실종을 한 서울oo국민학교 여교사 정수정(가명)양(22·마포구 oo동)이 37일 만인 24일 인천월미도(月尾島) 앞바다에서 표류시체로 발견됐다. 오전 8시쯤 떠오른 시체는, 죽은 지 한 달 이상된 듯 부패했으나, 동생 oo양(20)에 의해 정(鄭) 교사임이 확인됐다. 경찰은 인천(仁川) 경찰서에 새로이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타살 자살 두 갈래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실종
정(鄭) 교사는 4월 16일 학교가 파한 뒤, 전에 사귀던 군인 이(李) 모병장(25)과 함께 인천(仁川)에 간다며 나가 소식이 끊겼다.
정(鄭) 교사는 이날 오후 1시쯤. 이(李) 병장의 전화를 받고는 동료교사들에게 "무슨 수라도 내야지, 정말 못살겠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鄭) 교사는 서울교대 1학년때 당시 2학년이던 이(李) 병장과 사귀어 결혼까지 약속, 75년 교사가 된 뒤에도 사이가 좋았으나, 1년쯤 전 동로교사였던 한(韓) 모씨(28·현서울 K국민교)와 교제하면서부터 이(李) 병장을 멀리하고 삼각관계로 고민해 왔다 한다.
인천(仁川)에 가기 전날인 15일 밤 10시쯤에도 한(韓)씨와 함께 집으로 가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이(李) 병장과 만나 말다톰올 벌였다고 한다.
oo국민학교에서는 정(鄭) 교사가 실종된 2주 후인 4월 30일 자로 휴직 발령을 내고, 정(鄭) 교사가 맡고 있던 1학년 11반 담임을 강사에게 맡겼다.
수사
10여 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가족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처음 신고된 곳은 학교 관할서인 용산경찰서였으나, 용산서는 정(鄭) 교사의 주소지인 마포경찰서로 이첩했다. 사건의 구역이 용산—마포 그리고 인천 등 3개지에 걸치기 때문에 치안본부는 이 3개 경찰서가 모두 수사토록 했다.
경찰은 이(李) 병장을 연행, 정(鄭) 교사의 행적을 추궁 끝에 이 둘이 16일 밤을 인천 월미도여관에서 함께 지냈음을 밝혀냈다.
그러나 이(李) 병장은 "17일 아침에 깨어보니 정(鄭) 교사가 자리에 없더라"고 했고, 여관주인도 "새벽 5시 30분쯤 정(鄭) 교사가 문을 열어달라고 한 후, 혼자 나갔었다"라고 증언했다.
경찰은 또 정(鄭) 교사가 실종된 지 5일 만인 21일 자신의 주민등록증과 12만 1천5백 원짜리 예금통장, 도장등이 학교로 우송돼 왔음을 알았다.
이 통장은 반 어린이들의 자치회비를 정(鄭) 교사가 맡아갖고 있던 것이다. 통장을 넣어 보낸 봉투의 글씨는 정(鄭) 교사의 필적이 아니었다.
경찰은 ①이(李) 병장이 살해했을 가능성 ②자살했을 가능성 ③제3인물에 의한 피살 ④단순가출 등 네 갈래 수사를 폈으나 진전을 보지 못했고, 이 사이 이(李) 병장은 군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혐의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오후 5시 인천기독병원에서 실시한 시체해부 결과 목 졸린 흔적이나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온 정(鄭) 교사가 ▲숨진 뒤바다에 던져졌는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뛰어들었는지▲약물에 중독됐는지 등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가검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의뢰했다.
산책객(散策客)이 발견
발견
오전 7시 30분쯤 인천시 중구 북성동 1가 98 새인천수족관 앞바다에서 정(鄭)양의 시체가 표류 중인 것을 산책하던 김 모 씨(29)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김(金) 씨에 따르면 4m의 제방 바로 아래에 시체가 엎어진 채 등등 떠있더라는 것이다. 발견지점은 정(鄭)양이 투숙했던 관문여관에서 2백20m 떨어진 곳이다. 정(鄭)양은 청색 스커트에 청색재킷, 붉은 줄무늬 블라우스, 잿빛 구두차림이었으며 시티즌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시계는 방수—자동이어서 정확한 날짜와 시간울 가리키고 있었다.
시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 있었다.
경찰은 오전 11시쯤 정(鄭)양의 동생에게 보여 정(鄭)양임을 확인했다.
시체를 검안한 인근 해안의원 원장(42)은 "1개월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다리에 개펄홁과 불가사리가 엉켜있는 것으로 보아 밑에 가라앉았다가 떠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 1977.5.27 조간 7면 기사
실종(失踪) 여교사(女敎師) 자살(自殺)로 추정
속보=서울 oo국민학교 여교사 정수정(가명)양(22) 변사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26일 정(鄭)양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물에 빠졌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시체해부결과 통보에 따라 자살로 추정했다.
시체해부 결과에 따르면 정(鄭)양의 폐—간 등에서 플랭크톤이 검출, 바다에 빠진 후 물을 마셨음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밖에도 ▲정(鄭)양이 실종된 4월 17일 새벽 5시 30분 애인 이(李) 모병장(25)과 함께 투숙했던 관문여관(인천시 중구 북성동)에서 혼자 나갔으며 ▲평소 이(李) 병장과 H교사를 두고 삼각관계로 고민한 점 ▲외상이나 목 졸린 흔적이 없는 점 등을 들어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鄭)양이 실종된 후 학교로 우송된 주민등록증, 예금통장, 도장등이 든 봉투의 글씨가 정(鄭)양의 필적이 아니고, 자살로 단정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도 없어 다른 사람이 떼밀어 익사했을 가능성에 대해 계속 수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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