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빙신들
"빙신들, 뭘 알아야지"
tv에 소개된 당시 유명한 학원 강사가 하던 말이었다.
나는 그 빙신들에 속했다. 고등학교 2학년 국어책을 읽기는 했지만, 이해도는 낮았다.
"송자(宋瓷)에서 고려의 비취색(翡翠色)이 나오고, 고전 금석문에서 추사체가 탄생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 귤(橘)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고2 국어 교과서 <마고자> -윤오영-
"비취색이라. 해변을 뜻하는 beach색인가? 그렇다면, 모래사장 색? 모래사장 앞에 있는 바다색? 도대체 비취색이 뭐야?"
비취(beach)색을 모른다고 선생님에게 질문하면, 우리 반 담임이면서 국어 선생님이 뭐라 하실까? 담임선생님은 가만히 있는 나를 비꼬며, 내게 가끔 뭐라 했다. 또 내가 밴드부원이라는 사실이 싫다고 암시하곤 했다.
2. 100대 맞고 나가
"야, 밴드부. 너도 공부란 걸 하냐?" 담임선생님은 가끔 내 뒤통수를 살짝 치며 말했다.
내가 밴드부에 들어가고 싶어서 간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 특활반을 정할 때, 일본어반 지원자가 넘쳐 가위바위보에서 진 것 때문에 어떻게 흘러들어 간 거였다. 그래 노래나 하자하며 합창반에 들어갔다가 그만. 합창반에서 밴드부에 들면 장학금을 받고, 악기도 배울 수 있다는 음악 선생님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 고등학교 험난한 여정의 출발점이 되었다.
연기 나는 담배를 꼬나물고, 검은 교복을 풀어헤친 밴드부 선배의 말 한마디.
"여기서 나가려면 100대 맞고 가라"
그는 밴드부실 바닥에, 목구멍 저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가래침을 퉤 뱉었다. 살 떨리는 협박에 두 손들어 버렸고, 손과 발에는 공포의 수갑과 족쇄가 채워졌다. 두려움 속에 하는 수없이 개 끌려 다니 듯한 고등학교의 고통이 시작된 건데, 담임선생님은 나를 불량품이라 생각했다.
양옆을 누른 서양형 얼굴에 윤수일 코를 한 담임선생님은 나를 볼 때마다, '밴드부가 무슨 공부를 다하네?' 하면서 뼈 있는 말을 했고, 나는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런 선생님에게 비취색을 물어보면, 좋은 소리나 들었을까? 색깔은 눈으로 직접 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앓느니 죽지.
무지를 참았고, 어떻게 해결할지 몰랐다. 속앓이는 쭉 이어졌다.
대학교 수업도, 홀로 이 책 저 책 기웃하고 나서야 겨우 내용을 따라갔다. 수업의 이해도는 60% 미만이니 자존감은 땅 속에 대가리를 박고 있었다. 어쩌다 2학점짜리 교양과목 <보건학>에서 A+ 학점을 받아, 차마 죽을 생각은 못했다.
3. 60프로 이하
수개월 전 기계공학과 4학년인 조카에게 물었다.
"학교 강의 들으면, 몇 퍼센트나 이해를 하니?
"60% 미만이고요, 가끔 40% 이하로 떨어질 때도 있어요."
"고뤠?"
나는 그때 죽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다.
능글능글한 교수가 가르치는 철학 중간고사 성적은 F학점이었다. 음흉한 목소리로 농담을 섞어가는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철학 과목은 제쳐놓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보이는 사물이 정말 그 사물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나요? 그렇게 실체를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뭔 소리래? 그 교수는 당시 내가 가지고 있었던, 열렬한 기독교 체험 신앙을 무시하는 발언을 중간중간 첨가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 교수의 허튼 말들은 내 존재의 기반이 무너뜨리려는 악마의 소리로 들렸다. 그래서 그를 미워했다.
4. 비취색
비취( 翡翠, jade )는 에메랄드 녹색을 띠는 장식용 광물이다. 고려청자가 비취색을 띠는 것은 철분 함유량이 낮은 흙과 유약 속 산화철(FeO, Fe2O3)이 가마 속 불꽃과 만난 결과이다.
비취색은 beach색이 아니었다. 에고고.
<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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