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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관한 모든 것

'애국가가 바뀌었네' 나만 몰랐던 이야기. 안익태 한국환상곡

by 크루드 202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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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가 바뀌었다

  애국가가 바뀌었다고?

 

 

 나만 몰랐나 봐. 늦은 밤 운전하며 들었던 달라진 애국가는 오묘했다. 몇 번 따라 불렀다. 안익태 한국환상곡( Korea Fantasy )의 애국가 부분을 몇 번씩 들었던 것들이 생각났다.

 

  다음날.

 

  차는 새벽 강변북로를 스마트 크루즈 기능으로 질주한다. 폰에는 새로 편곡된 애국가 연주 화면이 지나고, 소리는 차 스피커의 저음을 울리고 있다. 

 

  기존 애국가보다 부드럽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KBS 방송 시작과 끝을 알려오던 그 애국가가 아니었다. ( KBS FM 97.3 MHz 새벽 4시 56분에 방송되는 건, 아직도 KBS 저작권의 옛 애국가이다 )

 

  연합뉴스 애국가 소개 화면. 팀파니 소리와 함께 관악기들이 연주하고, 화면엔 호른 연주자들이 등장한다. 호른 연주자는 순간 입술을 열어 공기를 빨아들이고, 금관 속으로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후 현악기들이 부드럽게 합세 했다가 다시 관악기들이 '빰 빠빠빰~ 빠밤' 노래를 준비시켰다.

 

 음악이었다. 운동장에서 부르던 노래가 아니었다. 

 

-더블베이스가 등장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나도 따라 부른다.

 

  반주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꽂은 남성 합창단원들. 정확한 발음을 위해 입을 벌리고, 힘이 들어간 턱근육이 입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입 안 공명 공간을 크게 만들려 애를 쓴다. 여성 합창단원들은 입을 활짝 열어 깊은 소리를 빚어낸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더블베이스 연주자는 낯익다. 정동제일교회 월요 정오음악회 바로 내 앞에서 연주했던 그분이다. 서울시향 더블베이스 안동혁 수석 연주자가 연주하는 모습은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현악기 더블베이스는, 관악기 바리톤·튜바 등과 함께, 오케스트라에서 저음을 맡는다. 저음은 리듬을 구성하는 기둥이다. 청중은 보통 저음에 맞춰 몸과 머리를 흔든다.

 

  음악이 흐르면, 나는 제일 먼저 저음을 찾는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피아노 그리고  관악기들과 함께 내가 올라탈 저음을 찾는다. 규칙을 따르지만 변모하는 낮은음을 찾는다.

 

  더블베이스 현을 손가락으로 힘차게 툭 튕기는지, 활로 강하게 쭉쭉 미는지, 활로 톡톡 치는지 들어본다. 금관인 바리톤·튜바가 아래에서 받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땅 밑까지 진동하는 팀파니의 두두두둥 발굽소리와 내장을 흔드는 신비한 북소리도 기다린다.

 

-눈물이 흐른다

  합창단이 '우리 나라 만세'를 정성스레 노래하고, 등장하는 더블베이스 연주자.

 

  수십 년간, 음악에 탈색된 하얀 머리와 살짝 다문 입술. 왼손 가락으로 현을 누르고 위 아래로 흔든다. 활을 긋는 오른손에 순간 힘이 들어갈 때면 몸통과 어깨가 움찔거린다. 현의 소리에 귀를 좀 더 기울이는 모습. 이렇게 진지한 모습을 마주한 적이 있던가. 음악을 빚어내는 저 눈빛.

 

  눈물이 난다.

 

  왜 이리 눈물이 날까. 당황스럽다. 내 몸을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눈물 날 예감이 들지만 믿기 힘들다. 설마. 나는 잘 울지 않는 사람이거든. 이러다 말겠지. 예상을 빗나간다. 눈가가 뜨거워지고 주르르 따뜻한 눈물이 흐른다.

 

  "왜 이러는 거야?" 나에게 묻지만 대답이 없다.

  "이유도 모르는 눈물이 무슨 의미가 있어?" 나를 다그친다.

 

  엉덩이를 맞아가며 악기를 연주했던 고등학교 밴드부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테너 색소폰 · 트럼펫으로 애국가를 연주하던 내 모습도 지나간다. 발로 톡톡톡톡 박자를 세며 연주하던 그 추억이 흘러간다. 

 

-음악이다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얼굴을 씰룩이며 나는 계속 노래를 따라 하려 애쓴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빰~~빰~빠밤~빰 빰 빰 '심벌즈 쨍'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심벌즈 등장 전, 예전 KBS 애국가에서는 트럼펫이 '빰~~빰~빠밤~빰 빰 빰' 동일음을 군가처럼 소리를 질렀었다. 바뀐 애국가에서는 모든 관악기가 동원된다. 

 

  플루트 / 오보에 / 클라리넷 /

  바순 / 호른 / 트럼펫 / 트롬본

  

  끝의 '빰 빰 빰' 은 동일음이 아니다. 관악기들이 모두 아래로 내려왔다가 올라가며 절묘한 느낌을 만들고, 팀파니 우르르르 소리와 함께 음량은 증폭된다. 절제된 심벌즈 소리와 함께 절정을 맞는다.

 

 

  달라진 애국가의 신비한 음은 무엇일까?

 

  빼곡한 나무와 푸른 초원이

  어우러진 살짝 비탈진 곳.

  저 높은 곳에서 바람을 타며

  아득한 아래를 바라보는

  여유로운 새의 눈.

  풍부한 관악기들의 여유로움이 빚어낸 결과일까.

 

  바뀐 애국가가 4절까지 나온다. 달리는 차 속에서 45분간 불러보려 기를 썼다. 불가능했다. 결국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어깨가 흔들렸다.

 

  호르몬 검사를 받아 봐야겠다.

 

< 현대적인 새 애국가 감상하기 / 연합뉴스 (Yonhapnews) >

 

현대적인 새 애국가 감상하기 / 연합뉴스 (Yonhapnews)

 

< 참고 자료 >

· 뚜~뚜~ 베이스가 리듬 악기 대명사 된 이유, 동아사이언스, 2014.07.06

 

애국가 23년 만에 새 음원 엄숙에서 친근으로, 중앙일보, 2018.12.18 >

애국가 음원이 약 23년 만에 새로 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17일 오전 동자동 서울사무소에서 ‘애국가 음원에 대한 저작권 기증식’을 열었다.

그동안 저작권위원회는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1906~1965)의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애국가 악보를 제공하고 있었으나 이번에 이용자들의 요구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음원 제작에 나섰다. 제작에 참여한 저작권자들로부터 기증을 받았다.

국민에게 가장 익숙한 애국가 음원은 1995년 KBS교향악단이 제작한 버전이다. 새롭게 녹음된 애국가 버전은 서울시향과 서울시합창단이 녹음했다. 이번 애국가 제작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합창단이 참여했다. 부산시향 상임지휘자인 최수열과 지휘자 차웅이 각각 오케스트라와 합창 지휘를 맡았고 편곡은 박인영 음악감독이 담당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새 애국가 음원을 ‘공유마당’사이트에 올려 국민 누구나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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