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 원성동 한 주택.
김정민(28, 가명)은 세 명을 현장에서 살해했다.
죽은 사람은 친자식을 돌보지 않고 첩과 유복한 살림을 하던 아버지 김형식(64, 가명). 아버지 첩인 서모 도순실(38, 가명) 그리고 집에 왔던 교회 목사였다.
범인 김정민 씨는 이복동생과 교회 집사 한 명도 찔러 중태에 빠뜨렸다.
김정민은 해병대에서 제대했지만 무직이었고, 천안 원성동에서 형과 함께 살고 있었다. 고리대금업을 하는 아버지 김형식 씨는 서모와 함께 따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친자식을 돌보지 않았다. 이것이 오래전부터 가정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6월 18일 저녁 7시 40분.
김정민의 형 김정태 씨는 이 날 저녁, 원성동 다른 집에 사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저녁 지을 쌀을 얻기 위해서였다.
형 정태 씨를 본 서모 도순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놀고먹는 자식들이 무슨 낯으로 쌀 얻으러 와? 쌀 없다."
돌아가던 형은 이복동생 김승리에 눈길이 닿았다. 4학년인 이복 동생은 닭고기에 하얀 쌀밥을 먹고 있었다. 화가 났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집에 돌아온 형은 동생에게 본 바를 모두 말했다.
김정민은 피가 끓어올랐다. 부엌으로 달려가 식칼을 집어 들었다. 아버지 집에 곧장 달려갔다. 저녁 식사를 마친 아버지 식구들은 심방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김정민은 대문을 잠갔다. 전기 스위치를 내렸다.
방 안으로 달려들어 아버지와 서모를 찔렀다. 배등 다섯 군데를 난자했다. 예배를 인도하던 침례교 천안교회 이재림 (33, 가명) 목사 가슴을 찔렀다. 이복 동생과 이보미(43,가명) 교회 집사는 밖으로 뛰어 나갔다. 김정민은 무서워 피하는 이복 동생 김승리(12, 가명) 군의 허리와 배를 찔렀다. 이보미 집사의 가슴과 등도 찔렀다.
이 사건으로 이재림 목사는 병원에 이송 도중 사망했다. 이복동생과 이보미 집사는 박외과와 해동병원에 실려갔으나 1963년 6월 19일 현재 중태였다. 김정민 역시 할복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이 사건은 흥부와 놀부 그리고 콩쥐팥쥐 이야기가 섞인 듯하다.
몰인정한 아버지와 차가운 서모.
그리고 편애.
쌓여 온 증오.
한 가족이 비극에 빠진 안타까운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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