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맛이 그대로 써니텐
귤맛이 그대로 써니텐
마셔봐요 써니텐 정말 좋아요
해태 써니텐
흔들어 주세요
"알았어"
흔들었다.
검은 교복에 금색 중(中)자가 달린 모자를 쓴 채로 몸을 흔들었다. 남한산성 수풀 속 잔가지들이 툭툭 부러졌다. 소풍 온 타학교 여중학생들이 볼 수 없는 응달에서, 한 손에 써니텐 병을 잡고 흔들었다. 좋아하는 사과맛을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엉덩이와 팔을 흔들었다.
어깨는 팔이 나가는 방향으로 함께 돌아갔다. 낙엽을 밟으며 흔들었다. 얇은 나뭇가지에 검은 모자가 닿으면 모자가 옆으로 돌아갔다.
한쪽에는 하이타이 써니10 ( HAI TAI Sunny10 ) 반대쪽에는 해태 써니텐 '천연과즙 10%'라 적힌 문구가 눈앞에서 흔들렸다. 천연과즙이라~ 내추럴 주스라고. '과즙 10%란 귤 사과 1개분에 해당'한다고 했으니 (76년 6월 경향신문 광고 하단사진), 나는 사과 한 개를 먹을 수 있는 거야.
목이 시원하겠지. 사과향을 내며 목구멍을 타고 쏴르르 기관총을 쏘며 내려가겠지. 입가에 미소가 삐져나왔다.
야. 모해. 흔들어야지. 너도 흔들어. 내 말에 옆자리 경수는 미쳤냐고 나를 쳐다보았다. 코 밑이 시커먼 그 녀석은 자리에서 끝내 일어서지 않았다.
시원할 거야. 안에 든 과즙이 잘 섞일 거야. 오른손으로 병을 잡고 딸랑딸랑 흔들었다. 두 손으로 잡고 위아래로 슉슉 흔들었다. 이제 마셔야지. 이리 와. 한 모금 줄게. 마지막으로 크게 흔들었다.
병따개로 폭.
폭발했다. 짓눌렸던 기체가 병 목 수면을 뚫고 위로 돌진했다. 불꽃놀이 화약이 폭발하듯 퍽 터졌다. 탄산수 거품은 솟구쳤고 공중에서 파열했다.
피할 시간도 몸을 숨길 참호도 없었다.
탄산 거품이 얼굴에 쏟아졌다. 동시에 쏴댄 수천 발의 포탄처럼, 이마와 눈 얼굴 전체를 후두두둑 강타했다. 액체가 뺨과 목을 타고 피처럼 흘러내렸다. 찐득하고 차가웠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팔소매로 눈부터 닦았다.
'흔들어주세요'라는 광고 속 여자 목소리는 홀리는 소리였다.
다짐을 했다.
남의 말을 너무 믿지 말자.
여자를 믿지 말자.
특히 예쁜 여자를.
아니지
그래도 듣고 보기는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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