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 쓰러졌다. 죽는구나.
호텔 룸에서 화장을 지우던 신부가 '무슨 일이에요?' 소리를 질렀다. 대답이 없자 욕실 문을 열어젖혔다. 쓰러져 있는 나를 보고 뛰어 들어왔다. 신혼 첫날 신랑이 욕실에 쓰러져 있다니.
수증기 포화상태인 욕실. 수증기가 산소를 다잡아 먹은 것 같았다. 문을 활짝 열어제친 아내는 나를 부축해 안았다. 잠시후 정신이 돌아왔다. 이거 꿈이겠지?
결혼식을 올린 것은 차가운 겨울이었다. 서울과 달리 제주도의 바람은 온화했다. 처음 보는 야자나무들이 택시 뒤로 휙 지났다. 둘은 특급호텔이 아닌 관광호텔에 들어갔고, 달빛 달린 어둠이 찾아왔다.
나는 샤워를 시작했다.
따끈한 물이 샤워기 물구멍을 뚫고 소리치며 쏟아졌다. 몸을 향해 꽂아 내렸다. 물에 맞은 피부는 벌겋게 움푹움푹했다. 열기를 담은 물방울들은 후끈한 김을 내뱉었다. 배를 두드렸다. 목, 얼굴, 머리에 기관총처럼 난사했다. 방울들은 몸에 부딪히고 폭파돼 산화했다. 수증기는 마법처럼 퍼졌다. 바닥에 떨어져 폭파된 물방울 속에서도 공중에서도 증기는 살아 나왔다.
결혼식장에서는 모든 게 낯설었다. 처음 해 보는 결혼식. 긴장 속에서 하루를 보냈고, 욕실에 있는 내가 환상 같았다.
물소리. 피부는 나긋나긋. 뼈는 노곳노곳. 갑자기 앞이 보이질 않았다. 흑암이 덮쳤고, 숨을 쉴 수 없었다. 쓰러졌다. 기절.
나는 왜 쓰러졌을까? 수돗물 속 염소 수증기에 중독된 것일까? 수십년간 염소가스 중독으로 쓰러진 줄 알았다.
아니었다. 기절한 것은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는데.
첫날밤 쓰러져 죽지 않은 관계로 지금 글을 쓰고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오랜 시간 서 있는 경우, 목욕탕이나 온천 등 뜨거운 물에 장시간 머물렀을 때, 혹은 햇볕에 장시간 노출됐을 때, 피를 보거나 신체의 일부가 다칠 위험에 처했을 때, 온도의 변화 등 주변의 환경이 급격히 변했을 때, 사람이 많은 밀폐된 공간에 갔을 때 미주신경성 실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순간 어지럽고 정신을 잃었다면... '미주신경성실신' 의심,이데일리,2020-06-15>
※ 미주신경성실신 = 신경 심장성 실신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긴장=>혈관이 확장, 심장 박동이 느려져 => 급격히 낮아진 혈압 => 뇌로 가는 혈류량 감소 =>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는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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