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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관한 모든 것

우리는 마음감옥에 갇혀 있다. 17년 지난 통 넓은 양복바지를 입고 다니던 그 사람.

by 크루드 2023.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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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많은 사람

 

  휘열 씨랑 회사 꼭대기 라운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휘열 씨는 17년은 족히 지난 넓은 통 양복바지를 입고 다닌다. 그의 재킷은 낡아 속이 보일 듯하고, 축 늘어져 흐느적거린다. 친한 동료들이 몇 번씩 옷 한 벌 사라고 했지만, 웃기만 하고 그대로 다닌다.

 

 

  그는 말도 조용히 한다. 강원도 구수한 억양에 온전한 문장으로 말한다. 누구를 공격적으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내가 날카롭게 말할 때도 그는 언제나 허허 한다. 그저 이해하려 한다. 걸음걸이는 노무현 대통령처럼 리드믹 하다.

 

  식당 입구에서 그는 초계탕이 나오는 B코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지만, 앙해를 구하는 몸짓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동태탕의 A코스로 가니, 배식 후 중간에서 만나자'고 서둘러 말했다.

 

 아직 코로나가 진정되지 않아, 투명 아크릴판을 두고 서로 마주 앉았다. 자기 식판에서 계란말이를 가져가라고 식판을 위로 올려줬다. 거의 다 먹을 즈음 자기 식판을 또 올려 고구마튀김을 가져가란다.

 

  나는 두 번의 호의를 기꺼이 받았다.

 

  오랜만에 걷자고 한다. 웬일인가 했지만, 오랜만에 해가 살짝 나왔으니 광합성을 하자고 내가 말했다. 걷는 중간 도심 원두막에 들어가 토란, 부추, 벼, 가지, 목화 등을 함께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초가지붕, 호롱불 아래서

 

 정동길로 꺾어지면서 휘열 씨는 외할머니 얘기를 꺼냈다. 젊어 홀로 된 외할머니가 계셨는데, 그 할머니 텃밭 때문에 겨우 먹고살았다고 했다.

 

  또 4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도 꺼냈다. 택시로 급하게 병원에 가고, 사람들이 모이고, 상여가 나가는 장면이 생각난다고 했다. 아버지와는 동네 사이렌이 있는 산에 같이 갔던 것이 기억에 있다고도 했다.

 

  "4살 때 큰일이 있어, 기억이 살아있네요. 그런데 홀로 된 어머니가 어떻게 형제들을 키웠어요?"

  "옥수수 삶아 팔고, 겨울엔 생선 집집마다 찾아가 팔고"

 

  "남의 집 다니셨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그래서 형들도 학교 포기하고 일찍들 돈 벌러 나갔어요"

 

  "형들도 그랬어요?"

  "어머니는 짚으로 이엉을 이어 엮어 초가지붕을 올렸고, 등잔에 불을 켜서 살았어요. 진짜 호롱불에 어떻게 책을 봤는지"

  "호롱불이라구요?"

 

 

-생각하기 싫은 과거

 

  "반찬이 없으니, 저도 도시락 안 가지고 다녔어요. 학교 근처 할머니 집에 가끔 점심 먹으러 가기도 했어요"

  "외할머니댁 말이죠?"

  "네. 외할머니는 미리 상을 차려놓고 나무하러 산에 가거나, 밭에 나갔어요."

 

  "아. 외할머니에게 사랑을 받았네요"

  "그렇긴 하죠. 농산물을 팔지 못하면 돈이 없으니, 아무도 옷을 사 입지 않았어요."

 

  "네. 먹을 것이 우선이니"

  "저는 그래서 어릴 적은 생각하기 싫어요"

 

  " ... "

 

  휘열 씨가 자기 얘기를 꺼낸 것은, 추억을 담은 내 글을 수 편 읽어서였겠지. 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을 거고. 마주하기 싫은 고통의 과거로 남몰래 시간여행을 떠났겠지.

 

-들어주기만 할 뿐

 

  그가 자기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의식적으로 충고 ∙ 조언 ∙ 평가 ∙ 판단 그리고 섣부른 위로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4학년 때 돌아가신 우리 엄마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휘열 씨의 얘기를 들었고, 그의 말을 사용하여 되묻기만 했다. 그가 좀 더 자세한 얘기를 해 주기를 바라며.

 

  나는 '휘열 씨. 그랬구나. 힘내자고' 이런 얘기도 안 했다. 내가 힘내라고 한다면, 앞으로 더 진행될지도 모르는 그의 얘기를 끊는 게 되니까. 그가 마음 감옥에 들어가 있다고 섣불리 판단하지도 않았다. 내가 감옥에 잡혀 있는지도 모르니까.

 

  '휘열 씨, 잘 될 거야' 이런 예언도 안 했다. 이 건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니까. 근거 없는 위로에 불과하니까. 위로는 말로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동안 글로 써서 보낸

  내 사랑 얘기가

  상처가 되었을 것 같아 미안했다.

 

  회사에 돌아와, 내내 휘열 씨의 눈을 보지 못했다.

 아픔이 지나가고 더 밝은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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