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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

안개 낀 도로를 질주하고, "내가 여기서 이렇게 죽는구나."

by 크루드 2023.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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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도로 질주

  운전을 했다. 자동차 전용도로 강변북로 커브 길을 만났다.

 

 안개가 살짝 낀 도로. 반대편에서 차가 돌진해 온다. 사각지대다. 정신을 차려야 하지만, 눈꺼풀엔 피곤이란 쇠구슬이 달렸다. 눈 뜨려고 발악했지만 실패했다.

 

 

  차는 제한속도 80km를 넘어 질주했다. 무엇을 실은 차들이 덮쳐올까.

 

  인화성 휘발유가 넘실대는 유조차? 벤젠∙염산∙수산화나트륨 등 독극물이 출렁이는 탱크트럭? 육중한 컨테이너 트럭? 과속으로 내달려 오는 고속버스? 무엇이 돌격해 오는 건지. 불안하다. 몇 초 후 벌어질 무서운 일. 

 

  눈은 감긴 채, 머릿속은 공포와 불안의 불바다. 눈꺼풀을 들었지만, 이마만 들썩였다.

 

  그래. 이렇게 죽는구나. 쇳덩이에 충돌해 죽는구나.

 

-이렇게 죽는구나

 무시무시한 소리. 차체가 팍 쪼그라들면, 나는 페트병처럼 구겨지겠지.

 

  뼈는 우두득 빠삭. 근육과 피부는 갈기갈기. 너덜 동맥이 드러나면, 시뻘건 피가 심장박동 따라 울컥울컥. 피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입가엔 비릿한 액체가. 피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에 흥건해진 옷. 말라 검붉게 뻣뻣해지겠지. 

 

 칼로 살점을 도려내는 통각. 고통은 뇌를 지질 것이다. 울부짖는 짧은 순간. 그 후엔 신음소리.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 빨리 죽여 주세요. 고통을 끊어 주세요.

 

  그렇게 죽을 수만은 없다. 죽기 위해 태어났던가. 내가 죽을 사람이야? 내가 왜 죽어. 몸을 깨워야 했다.

 

  차는 미친 듯 미끄러지고 있었다. 아직 아무 일도 없지만, 시간이 없었다. 얼굴을 오른손으로 찰싹찰싹 때리고, 퍼런 멍이 들도록, 허벅지를 꽈악 꼬집었다. 비틀어 돌렸다. 머리에선 뺨 맞는 감각과 꼬집는 통증을 느끼는 중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그런가 보지. 감각을 느낄 시간조차 없다.

 

-믿을 수 있을까

  브레이크를 밟아댔다. 소용없다. 미쳐 날뛰었다. 스스로 지옥을 창조하고 있었다.

 

  "차선을 아직 유지하고는 있는 거야?"

  운전대만 다급하게 휘돌렸다. 이렇게 하면 뭐가 나을까? 

 

  "어디서 돌격해 오는 거야." 

  박살 나지 않는 지금이 고문 시간이다.

 

  "눈감고 어떻게 운전하냐고? 나더러 뭘 어쩌라고. 내게 왜 이러는데, 제발." 

  울부짖었다. 고막이 찢어지게. 

 

  자동으로 직진하는 스마트 크루즈를 켰다. 카메라와 레이더는 오작동하겠지. 꽝 소리가 나면 목은 앞으로 툭. 에어백 화약 폭발 소리에 귀도 먹겠지. 펑 운전대 가운데가 찢어질 것이다. 그 틈을 비집고 질소∙아르곤∙수소 가스가 시속 300km로 에어백을 밀어낼 것이다. 순식간에 팽창한 에어백. 얼굴을 강타. 기억도 사라지겠지.

 

-마지막 숨을 쉬었다

  스마트 크루즈. 평소 오류를 자주 일으키던 놈. 내 편인지 의심스런 놈. 이런 녀석을 믿으라고?

 

  차는 계속 돌진했다. 죽음이 예고된 무덤으로. 오직 직진. 불로 달려드는 불나방같은 나.

 

  졸아든 심장. 헐떡거리는 폐.

 

  아아악. 날카로운 비명. 극한의 전율. 눈이 떠졌다. 여기가 어디였지? 살며시 숨을 쉬어 본다. 진짜 숨이었다. 침대에서 끈끈한 몸을 일으킨다. 

 

 살았구나. 

 감사의 기도를 했다.

 운전할 때 조심해야겠다.

 이날부터 차에 '졸음번쩍 껌'을 가져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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